2년을 기다린 아이폰을 갖게 됐고, 9년을 함께 살았던 시츄녀석을 2일만에 잃고, 5년만에 일 때문에 회사에서 아침을 맞았다. 1주일째 변비에 시달리고 있고, 2번째로 쳐 본 볼링에서 100점을 넘었고, 밤 10시쯤 오토바이 사고를 당한 알바생을 병원에 데려다주고, 영하 10도의 날씨에 쓰레기를 뒤지는 고양이한테 방해가 될까 돌아서 집에갔다. 1000만원을 예금통장에 넣었고, 월 50만원 적금에 가입했다. 주말 치과치료 견적이 18만원이고, 카드값은 0 하나가 더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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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알고 있던게 확실하다. 든든한 지원군을 얻은 기분이다. 하지만 ‘병든 이데올로기’, ‘악성 정신병에 걸린 비현실적인 나라’ 에서 격하게 우울해진다.
제길… 남의 얘기가 아니다. 최근 읽고 있는 네덜란드.
그런 다음에는 마치 식품목록에 대해 말하는 것처럼 덤덤한 말투로 미국에 돌아올 생각이 없다고, 적어도 부시 정부가 물러날 때까지, 아니 그 다음 정부 역시 부시 정부의 뒤를 이어 군사력과 경제력을 앞세워 세계를 지배할 의도를 가지고 있다면 그 정부가 임기를 마칠 때까지는 돌아올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것은 더 이상 신체적인 안전의 문제가 아니라고 덧붙였다. 물론 그런 문제 역시 중요한 요인이지만, 중요한건 제이크를 ‘병든 이데올로기’가 난무하는 나라, 대중이나 지도자가 미국과 세계뿐만 아니라 광신적인 기독교 복음주의 운동 덕분에 우주에 대한 독선적인 망상에 빠져 있는 나라, 다른 나라들에는 문명과 법과 합리적인 규칙을 무자비하게 강요하면서도 미국만은 면제받을 수 있다고 여기는 독선적인 망상에 빠져 있는 나라, 한마디로 ‘악성 정신병에 걸린 비현실적인’ 나라에서 키우지 말아야 하는 것이라고 했다.
한겨레21 돈과 사회적 위세. 모르는 내용도 아니고 어려운 내용도 아닌데 말야. 병든 이데올로기 혹은 일종의 악성 정신병에 걸렸기 때문이겠지?
지나친 궁핍 속에서는 인간적인 삶과 자존감을 갖기 어렵다. 그리고 사회적인 위세를 갖추려면 어느 정도의 물질적 잉여가 있어야 한다. ‘위세’에는 두 측면이 있다. 하나는 ‘위엄’이고 다른 하나는 ‘허세’다. 그 둘은 동전의 양면처럼 미묘하게 공존하지만, 명백하게 다른 내용이다. 허세는 자신의 지급 능력을 뽑내면서 타인과의 구별짓기에 몰두하는 것이다. 그에 비해 위엄은 그런 외형적 차이에 의존하지 않는다. 스스로 품위를 갖추고 안에서 우러나오는 기세가 있어야 한다. 자신의 인격과 역량으로 타인의 모자란 것들을 메워주고 남몰래 베풀어주는 너그러움이 거기에 있다. 그러한 덕망의 문화 유전자가 재생될 때, ‘돈만 있는 삶’이 아니라 ‘돈도 있는 삶’이 가능하다.
트위터 덕분에 블로그가 소외받는다. 뭐 자연스런 일이라 생각한다.
출근길 마을버스에서 천원짜리 지폐 하나를 줏었다. 줍기 전에 줏어도 될까 망설였지만 결국 줏었다. 그런데 줍고나니 후회가 된다. 찔린다. 다시 마을버스에 갖다 놓기도 뭐하니 꼭 좋은 일에 써야겠다. 스타벅스 계산대 앞 불우이웃돕기 돈통이 가장 먼저 생각나니 거기에 넣어야겠다.
작년 펜타포트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도 3천원인가를 줏었는데 거의 정확히 1년 만이다. 오늘은 펜타포트 다음날이니. 내년도 기대해 볼까?
작년엔 완전 재수좋다고 엄청 좋아했는데 오늘은 찝찝하다. 작년에 비해 조금 더 사람이 되었나보다.
조금 다른 얘기지만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 된다고 요즘 새삼 느끼게 된다. 과거 내가 했던 나쁘고 못된 짓 그대로 내가 겪게 되더라. 뭐 훗날이 두려워 착하게 살자는 것 보다 뭐 그렇다는거다. 좋잖아 서로서로. 단, 우리나라 좀 사는 분들하고 가진 분들은 열외인것 같다. 이 분들은 선택받은 분들이시라. 뭐 좀 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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